2008년 06월 14일
행운집적기 비판
간단히 말해 행운집적기는 이 세상을 변화시켰다. 어떤 치들은 이런 내 표현이 지나치게 단순하고 초라하다 지적한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행운집적기는 단순히 세상을 변화시키는 데에만 그친 것이 아니라 진보와 발전을 이뤄냈으며 좀더 격정적이고 종교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인류의 구원을 위한 제 2의 매개체'라 부르기에도 부족함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해석에 동의하고 있을뿐더러 그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뒷받침해줄 상당히 많은 근거 자료를 제시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사과와 관련된 연구를 하던 육종학자가 뜻밖에 인간의 쓰레기 유전자에 대한 기능 구조를 일부 밝혀낸 일은 행운집적기가 과학과 공학 분야에서 이룩한 대표적 업적으로 손꼽힌다. - 하필 그가 사과를 연구하고 있었던 까닭에 이 사건은 제 2 메시아 설에 대한 은유적 상징으로 활용되기도 했는데 나는 여기에 행운집적기를 예찬하던 사람들의 집적기가 개입되지 않았나 의심한다. - 그 외에 사망선고를 받은 환자의 수술 성공과 회복률의 증가 그리고 그에 따른 평균수명의 연장, 산업 재해의 감소, 기업 생산성의 눈에 띄는 증가, 예술 명작들의 홍수, 점차 0으로 향해가는 지니계수 등등. 그들이 근거로 댈 수 있는 통계적 자료는 양도 많고 다양했다.
과거의 경우라면 통계학자들이 통계의 해석에 대해 늘 주의하듯, 주장과 자료 사이의 엄밀한 관계를 논하며 이러한 근거의 오류 가능성들을 지적해봤을 것이다. 헌데 행운집적기의 사회과학적 성과는 통계수치들 사이의 상관관계와 인과성을 보다 신뢰성 있게 따질 수 있는 간단한 이론을 탄생시켰다. 그 방식에 따라 그들이 제시하는 자료를 컴퓨터에 입력하고 해석을 해보면 '이 자료들은 모두 적절한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라는 답을 얻게 된다. 이런 세상이었다. 통계라는 도구를 가지고 그들의 주장을 오류라 말 할 깜냥이 내게는 없다.
솔직히 인류에게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던 2012년 9월의 발견에 경이를 느끼기로는 나 또한 행운집적기의 예찬론자들과 다를 것이 없다. 또한 허무맹랑해보이던 발견을 기술화하고 상품화하는데 투자했던 정부와 기업의 진취적인 태도에도 감탄하고 있다. 그런 노력들을 거쳐 발명된 행운집적기가 역사의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행운집적기는 2015년에 대중에게 처음으로 선을 보였고, 좀 더 많은 시간이 흐르자 새로운 패러다임의 단순한 제시를 넘어 세상에 패러다임을 완벽히 구현해내는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후에 설명하겠지만 여기에는 대만인과 중국인들의 공이 컸다.) 모두가 입을 모아 말했다. 세상은 행복으로 가득해질 것이라고. 실제로 대단히 많은 사람들은 행복에 도취되었고 그 중의 대부분은 아직까지도 행복에 젖어 살고 있다.
하지만 지식인의 의무란 끊임없는 비판이다. 모두가 수긍하고 기뻐할 때에도 부인을 하며 비관적 미래를 암시해야 한다. 물론, 숱한 역사적 고비에서 지식인들이 때때로 비판 대신 침묵을 지키거나 비판을 위한 비판에 메여 본질을 잊곤 했음을 부인하진 않겠다. 나는 다만 근래 몇몇 지식인들의 비판이 그렇듯 건전치 못한 것은 아니라 생각하는 바. 그들의 의견을 모아 이 자리에서 조심스럽게 말해보려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것이 소극적이나마 내 의무를 다하는 길이라 믿는다.
행운집적기와 함께 우리는 루비콘 강을 건넜고, 레테의 강물을 마시지는 않았으되 과거의 경험만으로는 돌아갈 길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좀더 설명을 덧대보자면 우리는 돌아갈 길을 찾을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꽤나 명확히 알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 지니계수가 0으로 수렴해갔고 인류는 멸망으로 수렴해갔다. 나는 먼 과거에 공룡이 그랬듯 어느 한순간 인류가 이 지표 위에서 자취를 감추고야 마는 끔찍한 종말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찰스 파스테르나크의 말을 빌어 우리 인간을 호모 쿠아에렌스 즉, 탐구하는 인간이라 규정한다면, 끊임없는 발전과 변화를 위해 탐구하던 그 인류는 어느덧 개념적 멸망을 맞이하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이 것을 진보나 발전이라 말하곤 한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이 것은 그저 변화일 뿐이다. 지속적인 진보선상을 의미하는 칼 맑스나 헤겔의 변화가 아닌, 단순한 국면의 전환. 인류는 행운집적기를 통해 진보나 발전을 누린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그저 단순한 국면의 전환을 겪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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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08/06/14 05:11 | 트랙백 | 덧글(1)













